소쉬르 사회적 언어 이론에 대해 기술하시오

# 소쉬르 사회적 언어 이론: 랑그(Langue)가 구축하는 집단적 실재

20세기 언어학의 혁명가이자 구조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는 언어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전통적인 언어 연구가 시간의 흐름에 따른 개별 단어의 역사적 변화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소쉬르는 언어를 동시대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고정된 '시스템'으로 보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의 언어 이론은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넘어, 사회 집단 전체가 동의하고 유지하는 강력한 사회적 실체로서의 언어, 즉 *랑그(Langue)*의 본질을 밝혀낸다. 이 글은 소쉬르가 제시한 사회적 언어 이론의 핵심을 깊이 탐구하며,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어떻게 개인의 영역을 초월한 집단적 계약 위에 서 있는지를 논한다.

### 1. 랑그와 파롤: 사회적 언어와 개별적 발화의 이분법

소쉬르 이론의 핵심은 언어를 *랑그(Langue)*와 *파롤(Parole)*이라는 두 가지 차원으로 엄격하게 구분하는 데 있다. 이 이분법이야말로 언어가 가진 사회적 성격을 규명하는 출발점이다.

**랑그(Langue)**는 특정 사회 공동체 구성원들이 무의식적으로 공유하고 합의한 언어의 추상적이고 체계적인 규칙 및 문법 전체를 의미한다. 이는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존재하는 사회적 제도이자,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약속의 총체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한국어 문장을 구성할 때 사용하는 주어-목적어-서술어의 배열 방식, 혹은 특정 단어에 부여된 의미(예: ‘사과’가 둥근 과일임을 나타내는 약속)는 개인이 임의로 만든 것이 아니라, 수많은 화자들의 집단적 경험을 통해 굳어진 사회적 규범이다. 랑그는 마치 국가의 법전이나 교통 신호 체계와 같아서, 한 개인이 원한다고 해서 그 내용을 쉽게 바꿀 수 없다.

반면, **파롤(Parole)**은 랑그라는 시스템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발화 행위 또는 사용을 뜻한다. 이는 개인이 선택하는 어휘, 문장의 억양, 혹은 실수를 포함하는 매우 주관적이고 순간적인 언어 사용이다. 수많은 개개인의 파롤이 지속적으로 실현됨으로써 랑그라는 사회적 시스템이 존재하고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소쉬르는 언어학의 진정한 대상은 예측 불가능한 개인의 파롤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안정적인 랑그 시스템 자체여야 한다고 선언한다.

### 2. 랑그의 사회적 강제성과 집단적 본질

랑그가 사회적 언어로서 갖는 가장 강력한 특징은 그 '강제성'과 '비자발성'에 있다. 언어는 한 개인에게 주어진 유산이므로, 개인은 이미 완성된 언어 시스템에 순응해야 한다.

만약 어느 개인이 혼자서 ‘책상’을 의미하는 새로운 단어인 ‘**크라테스**’를 만들어서 사용한다고 가정해보자. 이 ‘크라테스’는 그 개인에게만 의미를 가질 뿐, 다른 공동체 구성원들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전달하지 못한다. 의사소통이 실패하는 이유는 그 단어가 랑그, 즉 사회적 합의의 영역에 편입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언어 기호는 사회 구성원들이 그 의미에 집단적으로 동의할 때에만 비로소 효력을 발휘한다.

이러한 집단적 합의는 특히 화폐 시스템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지폐 자체는 종이에 불과하지만, 사회 구성원 전체가 그 종이에 특정한 구매력이 있다는 약속(랑그)에 동의하기 때문에 가치를 지닌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언어 기호의 의미는 대상과의 자연적인 연결고리가 없으며(자율성), 오직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집단적으로 부과된 약속(사회성)을 통해 존재한다. 따라서 랑그는 특정 사회의 정신 속에 존재하는 '집합적 무의식'이자 '사회적 제도'로서 기능하며, 이는 언어가 단순한 심리 현상이 아닌 사회과학적 연구 대상이 되어야 할 당위성을 부여한다.

### 3. 언어 시스템이 사회를 규정하는 방식

소쉬르의 사회적 언어 이론은 언어 시스템이 단순히 사회를 반영하는 것을 넘어, 오히려 사회적 실재를 구성하고 규정하는 근본적인 틀이라는 통찰을 제공한다.

랑그는 단어들의 목록이 아니라, 단어들 간의 관계와 차이로 이루어진 구조이다. 예를 들어, 한국어에 존재하는 ‘형’, ‘오빠’, ‘아저씨’라는 호칭은 단순히 나이 차이를 나타내는 단어가 아니라, 가족 관계, 성별, 그리고 사회적 위계라는 한국 사회의 복잡한 구조를 내포하며 상호작용한다. 이 단어들은 서구권 언어의 ‘Brother’나 ‘Mister’와 일대일로 대응되지 않는데, 이는 각 언어 시스템(랑그)이 해당 사회의 문화적, 사회적 중요도에 따라 현실을 다르게 분할하고 분류하기 때문이다.

결국, 랑그는 해당 사회 구성원들이 세상을 인지하고 분류하며 소통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필터와 같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그 사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위계, 그리고 관계의 구조를 파악하는 지름길이다. 언어는 사회의 거울이 아니라 사회를 직조하는 씨실과 날실이다.

소쉬르가 제시한 랑그 개념은 언어를 개인적인 심리 현상이나 역사적 파편의 나열에서 해방시켜, 견고하고 체계적인 사회적 시스템으로 격상시키는 데 성공했다. 언어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아닌, 집단적 약속과 강제성이 지배하는 영역이며, 이 사회적 시스템이 화자 간의 일관된 소통을 보장하는 초석이 된다. 소쉬르의 이 통찰은 언어학뿐만 아니라 인류학, 사회학, 기호학 전반에 걸쳐 구조주의라는 거대한 학문적 흐름을 탄생시켰다. 결국,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단어 하나하나에는 개인의 의지를 넘어선, 수백 년에 걸친 사회적 합의와 집단적 실재가 응축되어 있는 것이다.